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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칼럼리스트
오래전에 개장하여 영업중인 기존의 골프장에 비하여 근래에 개장한 골프장은 자연을 그대로 살려 다양성을 추구한 컨셉을 지니고 클럽하우스의 분위기도 격조 높으며 회원의 권익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회원도 소수화 되어 있다고 그린키퍼협회 관계자는 근래 개장한 골프장의 편에서 역성을 드는 듯한 논조를 폈다.
딴은 그렇다. 근래의 코스들은 재력과 정성을 다하여 깔끔하게 가꾸어져 아름다운 정원 코스의 모습이다. 벙커며 연못 등의 해저드도 위험지역이나 장해지역이 아닌 듯 다듬어져 안도감을 준다. 맹랑하게도 러프가 거의 없어 곡타(曲打)에게 쉽고 싱겁게 세팅되어 있다.
근래의 코스들은 한폭의 그림처럼 곱고 아름답게 꾸며져 선경(仙境)을 연상케 하는 가히 지상의 명조각물 그대로인 것을 뽐낸다.
골프용어(用語)에서 러프(Rough)하면 페어웨이에 접해있는 긴 풀이 자라고 있는 지대이다. 허나 골프규칙에는 페어웨이도 러프란 용어도 없다. 다만 옛 문헌에 "코스란 플레이가 행해지는 지역을 말하며 그 양편은 러프 그라운드나 해저드로 경계되고 있다"고 나와 있고 이어 "세미러프하면 풀이 짧게 깎긴 페어웨이와 깎이지 않은 러프사이의 잔디지역을 말함인데 대개 하프커트된 상태"라고 풀이되어 있을 뿐이다.
2. 그 코스에 생명과 혼이 깃들려면
흔히 말하는 A러프든 B러프든 러프는 우리에게 좋은 연상을 주지 않는 혐오물이다. 나쁜 날씨를 러프 웨더, 거친 바다를 러프 시라고 하듯 코스안의 길고 거친 풀들이 자란 지대는 기피되고 미움받기 마련이다.
풀이 덜 깎여져 길고 그래서 작은 볼이 파묻히면 플레이하기가 어려운 지역, 골퍼치고 이 어렵고 고약하고 거친 지역에 빠져보지 않은 사람은 전무할 것이다. 즉, 러프탈출의 어려움을 체험해보지 않은 골퍼도 전무할 것이다.
그런데 신코스에는 러프가 없어 체험못하는 골퍼가 양산된다. "페어웨이란 티잉그라운드에서 그린에 연결되는, 대다수의 골퍼들에게는 그리 인연이 없는 잔디밭이다"는 유명한 영국의 조크가 무색하다. 대개의 골퍼들은 제각각 러프와 해저드를 전전(轉傳)하는 고생 끝에 그린에서 만난다는 이야기도 옛말이다. 또 잘 깎여진 페어웨이가 천국이라면 길게 잔디가 자란 러프는 지옥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 딱한 현상이다.
흔히 "해저드가 없는 골프는 생명도 혼(魂)도 없는, 지루한 스포츠일 수밖에 없다."에 대해 "러프 없는 골프코스는 생명도 혼도 없는 평이한 놀이터일 수밖에 없다."는 말로 바뀌어도 무방할 것이다.
"미국인은 넓다란 평지를 보면 골프코스를 만들 것을 생각하지만 영국인은 관목이 무성한 기복의 모래 황야를 보면 골프코스를 만들려고 생각한다."고 한 영국의 명골프라이터의 말이다. "골프코스는 거친 바다이고 골퍼는 항해하는 용감한 뱃사공이다"라는 말에서 우리는 골프의 본질을 찾아야 한다. 우리의 잘 다듬어진 정원(庭園)타입의 코스, 러프 없는 코스는 비골프성의 코스로 지탄받아 마땅하다.
3. 러프없는 코스를 만든 죄
스루더 그린(through the green)이란 골프용어는 괴상하다. 그린을 통하여(?)이니까...
현재 플레이하는 홀의 티잉그라운드, 그린 그리고 모든 해저드를 제외한 나머지 전역을 말함인데 그린을 제외하면서 스루더 그린이라니 말이 안되지만 엄연한 골프용어이니 별 수 없는 일이다. 옛날 그린이란 코스였었다. 그린은 플레이가 허용된 홀의 의미였다. 스루더 그린보다 스루더 코스라고 했더라면 쉽게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린 피(green fee)는 코스 피이고 그린키퍼는 코스키퍼이자 코스 슈퍼인텐던트(코스 총관리자)인 것이다. 슈퍼인텐던트 즉 코스 총관리자는 해저드인 벙커, 연못 등의 관리와 똑같은 비중으로 스루더그린의 페어웨이 양편에 있는 러프도 잘 관리, 정비해야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 러프는 코스 구성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담당함에도 가꾸기보다 깎아 없애기 일쑤이다.
근래 골프잡지 등에 의하여 톱10코스나 베스트 코스 10으로 선정되는 신설 코스를 보면 러프가 거의 없는 즉 러프리스(roughless) 코스들이어서 유감스럽다. 페어웨이 양편은 세미러프, 헤비러프로 이어져야 하지만 대개 시늉뿐이니 딱한 일이다.
세미러프에 빠지면 2타 손해본다는 속설이 톱10 코스 등에서는 아예 안먹히는 헛소리가 되어버렸다. 근래에 오픈된 정원(庭園) 타입 골프코스들의 러프라는 것도 재래의 러프가 아니다. 러프지대는 아예 준(準) 페어웨이이다. 잔디가 제대로 그리고 적절히 깎여있으니 말이다.
페어웨이가 경부고속도로처럼 넓어진다. 코스를 생명도 혼(魂)도 없는, 단조롭고 지루한 놀이터로 격하시켜 골프의 본질을 변질케한 죄를 코스슈퍼인텐던트에게 물을 것인가 아니면 코스업주(業主)나 회원들에게 물을 것인가.
4. 스코어 좌우하는 페어웨이 너비
1987년 제일CC에서 동해오픈이 열려 최윤수(崔允洙)가 16언더 272(29,70,65,68)로 우승하자 "제일CC 코스는 너무 쉽다"는 평이 나돌았다. 이에 발끈한 클럽측이 다음해의 대회개최를 거부하고 89년에 가서야 마지못해 개최를 수락했다. 그러면서 페어웨이 너비를 20m 내외로, 러프를 10cm로 기르고는 그린을 빠르게 하는 등 타이트한 코스세팅으로 경기를 치루었다. 결국 클럽은 우승(일본선수) 스코어를 7언더 281(71, 69, 69, 72)로 묶어 무려 9타나 떨어뜨림으로써 멋있게 불명예를 설욕했다. 코스의 난이도만을 높이려는 관점에서 만들어진 코스, 고액 그린피를 무는 많은 보통 골퍼들의 기량을 무시하는 코스, 프로나 톱아마들을 골탕 먹이려는 목적아래 설계되고 세팅된 코스이어서는 정도(正道)가 아니다.
코스이용자의 9할은 보통골퍼이고 이들이 각자의 기량수준에 따라 즐길 수 있는 코스이어야 함은 물론이다. 세계적 명코스 오거스타 내셔널GC(미국 조지아州)에는 OB가 없고 페어웨이는 넓고 근래에야 러프를 길렀다. 보통골퍼들이 보기플레이하기에 그리 어렵지 않게 설계한다. 반면에 프로나 톱아마가 파, 버디 또는 이글을 노리는 경우 매우 고도한 전략과 치밀한 기량 그리고 터프한 정신력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것은 페어웨이와 그린에 존재하는 여러 언쥴에이션, 기묘한 마운드 그리고 단단함의 극복이다. 이 부분은 바로 코스 슈퍼인텐던트의 몫이 아니던가.
5. 러프를 지배하는 코스
18홀에 무리하게 3백여명을 수용, 순조롭게 순환(라운드)토록 함에 있어 러프는 큰 방해요소일 것이다. 신속한 진행을 위한 부득이한 조치의 하나로 러프 없애기 즉 무(無)러프 코스화가 촉진된다. 이것은 전적으로 코스업주의 소관이라며 코스슈퍼인텐던트는 다만 상명하복 했을 뿐이라고 변명하여 빠져나갈 것인가.
깊은 러프는 보다 많은 내장객의 소화를 지체시키고 필경 클럽의 재정 수입을 감소시킬 뿐 아니라 많은 회원으로부터 볼멘 불평의 소리를 낳게 하는 해로운 존재로 인색되어 우리 골프코스의 병폐는 커져만 간다.
러프를 제대로 가꾸는 코스세팅이 쉽고 단조롭다는 평을 듣는 코스를 한결 재미나고 스릴 넘치고 도전성 높은 명물(名物)코스로 그레이드 업 시킨다는 사실을 코스업주와 회원들에게 숙지시키는 일이야말로 코스슈퍼인텐던트의 신성한 임무가 아니겠는가. 이점에서 각성을 촉구한다.
코스에서 러프의 존재가 얼마나 큰가를 알리는 외국의 좋은 예를 소개해 본다. 미국 아리조나주의 한 명문 코스를 찾아 라운드하던 한국인 일행이 매우 부드러운 잡초 등이 자란 러프지대 안에 승용카트를 몰고 들어가 볼을 찾아 이러저리 헤매이다가 마침 클럽의 마샬에게 저지당했다.
마샬은 큰 소리로 "러프에 카트를 몰고 들어가서는 안된다."고 엄중한 주의를 했다. 카트를 타고 페어웨이 위를 자유롭게 다니는 것은 괜찮지만 러프에는 카트로 들어갈 수 없다는 로칼룰을 그들은 몰랐던 것이다.
잡초가 잘 자라지 않는 사막코스의 러프는 애써 재배하고 가꾸는 러프 아닌 러프이었다. 델리킷한 상태로 소중하게 보호하는 코스의 중요지대에 카트는 통행금지가 마땅하다.
이야기 안에 우리 코스업주와 코스슈퍼인텐던트들이 참고할 사항이 많다. 러프가 엄연한 코스의 구성요건이라는 사실, 그리고 러프가 거의 없는 코스는 아무리 페어웨이나 그린이 잘 정비되어 있다하더라도 결격 코스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 말이다.
기량이나 투지 말고 해저드, 러프, 바람 때로는 악천후와도 싸워서 그 골프에 생명과 혼(魂)이 깃든다. 아니면 그냥 공놀이이다. 프로경기의 관전포인트에는 프로와 러프와의 싸움이 들어있는 것이다.
6. 슈퍼인텐던트의 책임과 권리
페어웨이의 너비는 코스의 스케일감을 좌우한다. 특히 토너먼트를 개최하는 코스에서 페어웨이의 너비는 30야드 내외까지 축소되고 그 축소는 물론 러프의 설정으로 이루어진다. 그린까지의 거리에 따라 러프에 의한 난이도는 조정된다. 깎는 길이와 밀집도를 달리한다. 물론 그린에 가까워지면서 서서히 러프는 길어져야 한다. 따라서 그린 주위에는 해저드 아니면 매우 깊은 러프가 설정되어 플레이어에게 고도한 리커버리기술을 요구하는 것이 정칙이다.
그린에 가까이 다가가면서 페어웨이를 더 좁히고 좌우의 러프도 더 깊게 하는 것, 그래서 장타가 어드밴티지를 누리면서 동시에 큰 리스크도 안도록 하면 플레이가 한결 재미나고 또 공정해질 것이다.
'러프를 잘 가꾸고 살리자'가 본고의 주제이다. 즉 러프지대의 러프를 나름의 손질로 러프를 조성하는 일은 코스 슈퍼인텐던트의 자랑스런 권리이다. 좋은 슈퍼인텐던트란 이 권리를 잘 행사하는 프로를 말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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