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다. 형제가 없어서 그런지 친구들과 어울려 운동장에서 뛰어놀기를 유난히 좋아한다. 그 녀석이 미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 학교가 끝나고 운동장에서 종종 놀다 돌아온 모습은 실로 가관이곤 했다. 새로 사서 입혀보낸 옷에는 온통 초록색의 풀얼룩이 들어있어 아내로부터 꾸중을 듣곤 했지만, 운동장에서 뛰고 놀기를 좋아하는 아들녀석의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다. 때문에 아내의 고민은 어떤 세제를 써야 옷에 들은 녹색의 풀얼룩을 빼내느냐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아내의 고민이 5년전 귀국과 함께 아들녀석이 국내 초등학교로 전학가면서 180도 변하였다. 이제 옷에 풀얼룩을 묻혀 오지 않는 대신 온통 다리며 팔꿈치가 까지고 멍이 들어 오기 때문이다. 차라리 옷에 묻은 풀얼룩을 빼던 때가 더 좋았다는 아내의 말을 들으면서 새삼 잔디의 고마움과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잔디잎은 용수철과 같이 충격을 흡수하는 능력이 있다. 또한 잔디밭을 깎으면서 밑에 쌓인 예지물(대취)도 쿠션효과를 주어 잔디의 탄성을 크게 함으로써 운동장에서 노는 아이들이 넘어졌을 때 다치지 않도록 보호해 준다. 또 그 위에서 아이들이 뒹굴고 미끄럼을 타느라고 옆으로 쓰러졌던 잔디는 낮에 온도가 올라가면 자연스럽게 본래대로 회복되고, 많이 밟아서 나지가 된 피해지역도 적당한 조건만 갖추어주면 다시 회복하는 강한 회복력까지 갖추고 있으니 이보다 더 적합한 운동장용 카펫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아니 그뿐인가, 잔디의 녹색은 눈을 편하게 하여주고 시력을 좋게 하니 책이나 컴퓨터를 보면서 피곤해진 우리 아이들의 눈을 보호해 주는데 더없이 좋다고 하겠다. 또한 정서를 순화시켜주는 능력이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런던의 한다리를 녹색으로 페인트 칠을 하였더니 그나라에서 자살한 사람의 비율이 34%까지 떨어졌다는 보고도 있다. 또 주변에 녹색이 많은 지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위장병이 드물다는 사실도 시험과 입시의 스트레스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 자녀들의 학교 운동장에 잔디를 깔아주어야 하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미국은 잔디 전체 재배면적의 약 70% 이상이 정원용이다. 가정의 정원, 학교운동장, 공원 등 어디를 가나 잘 가꾸어진 잔디를 볼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최대 잔디 재배지역은 골프장이 대부분이다. 물론 요즘은 아파트 조경공사 등에서 녹지를 많이 마련하고 있지만 여전히 '잔디를 보호합시다', '잔디밭에 들어가지 마시요'라는 경고 문구 또한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학교 운동장은 아예 맨땅으로 되어 있어 바람이 불면 흙먼지가 일어나고, 비가 오고나면 진흙으로 엉망이 된 운동장에서 우리의 미래인 어린아이들이 뛰고 있다. 지난 4월말 안양베네스트 골프클럽에서는 벚꽃이 만개한 날을 잡아 지역주민들을 하루 골프장에 초대하는 행사를 가진 적이 있었다. 그때 수천명의 어린 학생들이 양탄자 같은 잔디 위에서 마구 뒹구는 모습을 보면서 흐뭇하다기 보다는 아이들에 대한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한참 사회문제가 되었던 고관부인을 입힐 고급 밍크코트 하나 값이면 3-4군데 학교 운동장에 잔디를 입힐 수 있을텐데 말이다.
진정 우리가 우리나라의 미래를 걱정한다면 최소한 우리의 미래를 짊어진 어린 학생들이 뛰노는 학교 운동장만이라도 잔디를 깔아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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