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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씨 좋은 그린키퍼

김헌수
경기C.C. 전무이사

코스에서 흔히 듣는 얘기 가운데 하나가 핀 위치에 관한게 아닌가 싶다, 핀이 그린의 한가운데 있으면 그냥 넘어가지만 올리기 까다롭거나 붙이기 애매한 곳에 있을 경우에는 핀 「관리하는 양반이 오늘은 기분이 안좋은가 보다. 왜 이렇게 고약한 데다 꽂아 놓았지」 하면서 마치 기분에 따라 옮기거나 심통을 부린 걸로 알고 한마디씩 하며 지나간다. 어쩌다 홀컵을 이동시키는 도중에 마주치기라도 하면 「하필 우리가 온 시키려고 할 때 옮기느냐」는 핀잔부터 팀이 밀리는 날에는 「핀을 저런데 꽂아 놓으니 진행이 느리지」하면서 융통성 없음을 나무랄 때도 있다. 그럼에도 굳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전체 그린을 고루 좋게 유지하기 위해서다. 한 군데를 너무 많이 밟으면 그린이 쉽게 상하기 때문에 한 백명 정도가 지나가고 나면 반드시 핀을 옮기게 되어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린이 스트레스를 받아 약해지거나 변색이 돼 그 다음날이면 바로 표가 난다. 그래서 그린을 열십자나 우물정자 모양으로 구분해 놓고 손님이 많은 시즌에는 하루에도 두세 번씩 돌아가며 옮겨주게 되는 것이다. 되도록 그린상태가 좋은 곳을 선택하고, 예약이 많은 주말에는 빠른 진행을 위해서라도 쉽고 편한 곳에 홀을 만들려고 애를 쓰고 있다. 그렇지만 일부 손님은 어려운 핀을 공략해야 되니 요즘처럼 서비스 경쟁이 치열할 때에 내장객들을 기분좋게, 스코어 잘 나오게 하고 싶은 마음과 더해져서 정말로 안타까울 때가 많다. 대부분의 골프장들은 그린키퍼들 중에서도 비교적 노련하고 심성이 고운 사람에게 맡기고 있다. 골퍼들이 높이 평가하는 대표적인 명문 골프장도 알고 보면 코스의 얼굴이 그린을 내몸같이 아끼고 사랑하는 그린키퍼들의 숨은 노력과 정성이 깃들여 있기에 더욱 빛이 난다고 보면 된다. 경기CC에서 홀컵을 갈고 있는 이용구씨 같은 분도 넉넉한 마음씨에 사람 좋기로 소문이 나 있지만 가끔은 핀 위치에 따라 오해를 받기도 한다. 날마다 되풀이하는 일인데도 그 때마다 남모르게 가슴 조이며 신경이 곤두서지만 손님들로부터 「그린 참 좋다」고 하는 말 한마디에 만사를 잊는다고 하는 그런 사람이다. 땀과 함께 상큼한 풀내음이 묻어나는 이들 그린키퍼들의 소박한 바람은 오직 하나, 늘 새파랗고 융단같은 그린을 만들어 손님들 모두가 즐거운 하루를 보낼 수 있도록 하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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